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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들 (박지연,2011)

글:장형윤(애니메이션 감독) / 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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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들

“당신과 헤어진 것은 싫어져서가 아니야.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행 같은 거야.”

남자는 우주를 떠다니는 버스 정류장에서 한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초현실주의 같은 장면은 박지연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낙타들>(2011)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작품의 남자 목소리 연기를 하였다. 원래는 진짜 배우가 연기하기 전 가이드 녹음이었지만 적당한 배우를 구하지 못한 감독의 결단으로 나의 목소리 연기가 작품에 남게 되었다.

사실 내가 목소리 연기 했다는 이유 말고도 이 작품은 무척 뛰어난 작품이다.

마치 관처럼 생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는 여자. 이 집은 텍사스의 어느 모텔처럼 사막과 같이 덥고 황량하다. 그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전 애인은 냉장고에 앉아 있다. 남자는 “당신과 같이 있지 않을 때 당신이 더 그립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면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 얼굴 안에 들어 있는 앵무새이다. 남자 안에 있는 앵무새는 늘 같은 말을 한다.

이 작품은 감독의 전작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2008)과 마찬가지로 남자와의 연애와 이별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박지연 감독의 희소성은 그녀가 다루는 사랑의 일면이 성숙하다는 데에 있다. 성숙하다는 의미는 우리가 많이 보는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이다.

국내의 단편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은 많이 있는 편이다. 그러다 대부분의 작품이 사랑이나 이별을 TV 드라마와 다르지 않은 깊이에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는 창작자들이 주로 대학생들이고 20대 초중반의 나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은 이별을 하고 새로운 좋은 남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오해를 풀고 재회를 하는 정도의 패턴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낙타들>에 나타난 여자 주인공은 다르다. 많은 상처 때문에 메말라 버린 주인공은 그렇다고 남자를 욕망에 사로잡힌 나쁜 존재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다시 달콤한 사랑을 꿈꾸기보다는 관같이 생긴 냉장고를 타고 우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박지연 감독 본인은 자신의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의 내면을 이렇게 건조하면서 시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드물다. 또한 이 작품의 이미지와 상징 또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앵무새가 들어 있는 얼굴을 가진 남자. 앵무새는 남자의 욕망을 상징하는데, 앵무새가 날갯짓을 시작하면 남자는 정신없이 방안을 날아다닌다. 여자는 “내가 구해 줄게” 하며 밧줄을 던진다. 그리고 밧줄에 잡힌 남자는 시계추처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러다가 앵무새는 얼굴에서 나와 남자의 몸을 완전히 먹어 버린다.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힌 남자의 모습을 이토록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독특한 스타일 때문인지 이 작품은 부산 국제영화제와 4대 애니메이션에 페스티벌로 불리는 안시, 자그레브, 오타와를 포함한 해외 많은 영화제에 상영되었다.

박지연 감독의 신작이 곧 나오는데 어떤 이야기와 이미지로 신작을 만들었을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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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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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11분
감독 : 박지연
각본 : 박지연(스토리)
출연 : 정연주(여자 목소리), 장형윤(남자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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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들
    김이환(독립영화 칼럼니스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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