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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들 (박지연,2011)

글:김이환(독립영화 칼럼니스트) /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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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들

여자가 집으로 돌아온다. 앵무새를 얼굴에 붙인 남자가 방에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여자는 앵무새 남자에게 다른 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는 여자를 놔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 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낯선 존재가 되었다. <낙타들>은 남자 얼굴에 정말로 앵무새가 붙어 있는 이미지로 이것을 표현하는데, 이런 표현은 상투적이지만, 정말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이미지다. 그동안 방에는 불안한 듯이 바람이 계속 불고 커튼과 전등이 흔들린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면 주인공에게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는 변명을 한다. 여자는 담담히 일상을 반복하면서 자신도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하고, 삶이 사막을 건너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이 대화는 대화라기보다는 마치 내레이션 같은데 평소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대화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두 주인공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같은 대화로 이야기를 채운다.

남자는 방을 떠나려고 하지만 여자가 붙잡는다. 둘은 천장에 매달려 흔들거리면서 서로의 엇갈린 욕망에 대해 말한다. 이윽고 앵무새가 남자를 삼키면 남자는 앵무새 안에 갇힌다. 남자는 그동안에도 계속 냉장고에 들어 있었다. 집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간인 냉장고에서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난 셈인데,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 버린 남자가 뭔가를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자는 우주같이 넓고 어두운 그곳에서 기차를 기다리지만, 허공을 떠도는 남자가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순 없다.

홀로 잠든 여자의 방에 중국에서 온 사막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미세먼지인지 황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무튼 영화 속 공간이 우리의 일상과 멀지 않은 공간임을 말하는 것 같다. 여자가 창밖을 내다보는 건물은 우리가 사는 도시의 풍경이며 이 공간에는 다른 여성들도 있다. 또는 곧 벌어질 다른 갈등을 암시하는 것도 같다. 여자의 집에 다른 여자가 찾아오는데, 마치 다방처럼 쟁반에서 보온병과 커피잔을 꺼내 내려놓는 모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방 여성의 이미지다. 앵무새는 여자를 데리고 날아가 버리고 여자 홀로 집에 남는다. 선인장이 자라는 사막으로 변해버린 방에서 여자는 남자가 들어가 있던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괴로운 마음이 폭발하는 순간, 영화의 이야기도 비약을 이룬다. 그녀는 폭발한 냉장고를 타고 방을 탈출해 우주를 떠돈다.

앵무새 안에 갇힌 남자처럼, 그녀가 냉장고 밖으로 나오려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사막에서 사는 다른 여성들처럼 홀로 존재하는 법을 깨우치거나, 자신이 뭘 원하는지 찾아야 할 것이다. 여자가 앵무새 안에 갇힌 남자에게 했던 말, ‘그 무언가를 꼭 찾길 바란다.’는 말이 이제는 스스로에게 했던 말처럼 들린다. ‘낙타들’이라는 제목은(실제 환경이 그렇든 혹은 감정적으로든) 사막처럼 황량한 도시에서 견딜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은 냉장고 안에서 잠든 채로 욕망만큼이나 넓은 우주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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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들  Camels ( naktadeul )
2011 | 11분
감독 : 박지연
각본 : 박지연(스토리)
출연 : 정연주(여자 목소리), 장형윤(남자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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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들
    장형윤(애니메이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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