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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빈곤, 극장용 애니메이션 전성시대

글:송경원(씨네21 기자) / 201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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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빈곤, 극장용 애니메이션 전성시대

“뭘 볼지 모르겠어. 추천 좀 해줘.” 영화기자라는 직업 탓에 주변 지인들에게 종종 영화추천을 부탁받곤 한다. 사실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왠지 나의 수준을 평가받는 것 같기도 하고 기왕이면 제일 좋은 영화를 골라주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문제는 영화를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들은 대개 단 한 편의 영화로 최대의 만족을 얻길 원한다는 거다. 사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영화만큼 예민하게 취향을 타는 물건도 드물다. 즐겨보는 장르에 따라 선호가 다를 수밖에 없고 이제까지 본 영화의 양에 따라 즐길 수 있는 폭도 차이가 난다. 심지어 근래의 고민이 무엇이고 그날의 기분이 어떤지에 따라 같은 영화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단 한 편의 정답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럴 때마다 “네 구미에 당기는 걸 보라”는 두루뭉술하고 비전문가적인 답변으로 슬그머니 발을 빼곤 한다.

얼마 전 유치원 봄방학을 맞이한 7살 조카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골라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TV를 되도록 보여주지 않고 싶다는 누님의 바람에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자란 우리 조카는 뭘 보여줘도 신기해하는 편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 여기고 개봉작을 검색해봤는데 생각보다 난감했다. 방학시즌이라 그런지 꽤 많은 작품이 극장에 걸려 있었고, 작품들이 대부분 비슷해 보였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재미있는 작품이 없었다. 조카님은 아직 취향을 구분할 만큼 많은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한지라 웬만한 작품을 봐도 만족해할 것 같았다. 기왕이면 함께 볼 누님도 만족할만한 작품을 골라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아동 애니메이션과 가족 애니메이션 사이에는 적지 않는 간극이 있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라는 게 무얼까. 저연령층 아동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들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걸까. 아마도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 대한 오해는 여기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을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건 아이들이 여기에 좀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기 때문일 것이다. 출발은 그렇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이들의 것이란 낙인을 찍은 채 방치해주면 어느새 편견으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면 된다는 접근은 점차 아이들‘만’으로 한정되고 급기야 아동용은 유치해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으로 자리 잡는다. 양산품처럼 찍어져 나오는 비슷한 아동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제작자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재미’란 무엇일까 반문하고 싶어진다. 물론 긴 시간 집중하기 어렵고, 플롯이 지나치게 복잡해서는 안 되며, 직관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의 요령들은 필요하다. 다만 오해해선 안 된다. 이건 연령층의 문제가 아니라 장르와 취향의 문제다.

가령 TV용 변신로봇물에서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장면은 로봇이 변신하는 순간이다. 매화 반복되는 장면일지언정 그 순간이 가장 두근거린다. 드라마적으로는 필요치 않은 그 장면이 말이다. 하지만 그건 변신로봇물을 좋아하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변신장면이야말로 실질적으로 장르의 핵심적인 볼거리이고 그만큼 공이 들어가기 마련이니 그 장면에 열광하는 게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신장면만 덜렁 던져주고 드라마를 무시해서도 곤란하다. 적지 않은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이 이 부분에서 힘을 빼버리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크고 작은 서사적 구멍들을 ‘아동’이라는 단어 뒤에 감추는 건 요령부득의 변명일 따름이다. 답은 단순하다. 아이들‘만’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가를 순 있어도 연령에 따라 가를 순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 조카님처럼 너그러워서 웬만한 작품에서는 가장 즐거운 지점을 찾아서 열광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보고 착각해선 안 된다. 어른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야 아이들도 재미있게 본다. 그게 기본이다.

몇 년 사이에 수입 애니메이션들을 중심으로 꽤 많은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이 시즌마다 극장에 걸리고 있다. 아동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장이 확인되었다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작품 수는 늘었음에도 선택은 여전히 어렵다. 단지 양이 늘어난 동어반복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반가웠던 작품은 레트로봇에서 제작한 <극장판 또봇: 로봇 군단의 습격>이었다. 단언하건데 아동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가족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고 싶은 작품이다. 개봉관이 많지 않아 성적은 아쉬웠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꾸제트>도 인상적이었다. 습관처럼 내뱉는 ‘아이들의 눈높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왕에 아동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장이 확보된 마당에 다양한 색깔과 개성을 지닌 ‘다른’ 작품들이 좀 더 많이 스크린에 걸리길 기대해본다. 비슷해서 추천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너무 다양해서 고르기 오기 어려운 날이 오길 고대한다. 그제야 상황과 취향에 따른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간 너는 왜 그렇게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동용이 아니라 ‘OO’장르이고요,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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