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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TV 시리즈용 애니메이션 만들기 - ②프리프로덕션

글:한태식(괴수연구가) /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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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TV 시리즈용 애니메이션 만들기 - ②프리프로덕션

프리프로덕션이 시작되면서 디자이너는 수많은 디자인 시안을 개발하며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우곤’ 한다. 본 이미지는 실제 진행 중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디자인 시안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정작 하나도 선택받지 못했다. 레트로한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디자인을 외쳤던 디자이너는 드디어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디자인을 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기획실은 처음 컨셉을 모두 뒤집기로 한다. 그사이 캐릭터 디자이너는 한 10년은 늙었다. ⓒCentral Animation Studio


“캐릭터 디자인 시안 17-05번입니다.”
“음.. 확실히 제일 처음 게 좋네, 01-02번 디자인으로 가시죠”
“네... (침묵) 일단 파일명에는 파이널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아! 당연!”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TV용 애니메이션 만들기 두 번째. 프리프로덕션 과정이다. 운 좋게 기획단계에서 투자가 시작되거나, 지원사업에 선정되거나, 아니면 대출에 성공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작품의 디자인 수정과 시나리오 개발과정이 시작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예산이 투입되며, 전문인력들의 가시적인 작업 성과가 등장하기 시작된다. 디자인은 작품의 내용과 캐릭터성, 그리고 메인 타깃 분석에 의해 수정되고, 기존의 기획 개발 단계에서의 컨셉아트가 배경 디자인으로 수정되기 시작하며, 작품의 기획 과정에서 갈팡질팡하던 이야기 구조들이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등으로 확정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보통 이때 참여하는 인력은 아트디렉터, 프로듀서, 캐릭터 디자이너, 배경 디자이너, 시나리오 작가 등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예는 돈이 많은 또는 이전 작품에서 수익이 많았던 애니메이션 회사에만 한정된다. 보통 여기서 언급할 ‘우리 같은’ 우리들은 사정이 다르다.

일단 제작비 전체에 대한 투자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으로 대표되는 작은 스튜디오의 감독 또는 프로듀서들은 프리과정에서도 여전히 투자사 미팅과 방송국 미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그 도중에 디자인과 설정에 대한 의견도 등장하기 때문에 매번 디자인 수정과 이야기 구조도 변경된다. 이때부터 다시 지옥문이 열린다. 디자이너들은 수많은 시안들을 내놓는데, 보통 4~5번 정도 수정을 미친 듯이 진행한다. 어떤 경우는 싸그리 새롭게 엎어 버리기도 한다.

사실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는 아트디렉터나 디자이너의 꿈은 오토모 가츠히로나 브레드 버드, 아니면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성인 취향의 근사한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우리도 <아키라>의 배경 설정과 <인크레더블>의 유니크함, <카우보이 비밥>의 하드 보일드한 캐릭터 디자인 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적은 예산과 빡빡한 일정의, 어린이 또는 유아를 메인 타깃으로 잡고 있는 TV 시리즈용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야 하는 운명, 이를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취향과 일은 정말로 공유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프리단계의 또 다른 꽃. 시나리오다. 당연히 시나리오는 작가가 작업을 하는데, 보통 작은 스튜디오에서는 풀타임을 근무하는 작가를 두기가 어려워 단기간 또는 프로젝트 단위로 작가를 고용한다. 물론 사장님이 직접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어린이/유아용 애니메이션의 작가들은 전업 애니메이션 작가를 포함해, 동화작가, 방송작가, 코미디 프로그램 작가, 쇼프로그램 작가 등이 있다. 물론 급할 때는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 아트디렉터, 프로듀서, 심지어 인턴들이 쓰는 경우도 있다.

보통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경우 나이가 35세에서 45세 정도의 나이 또래로 세상의 고된 풍파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세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프리랜서라는 미묘한 고용불안 상황까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에 익숙한 그리고 그러한 글에 더욱 자신감을 가진 천성의 글쟁이들이다. 지금 이 세대들이 <은하철도 999>를 보았고, <바다소년 트리톤>을 보았고, <에반게리온>을 철학적으로 분석을 들이밀며 봐온 세대들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러한 준 오타쿠들과 함께 “5세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정말 이런 게 프로정신 아닌가!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회의에서 가끔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시나리오상으로는 착하고 착해빠진 캐릭터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마지막 화에서 우리의 5세 주인공 ○○이 지구인의 반 이상을 대량 살상하고, 우주도 괴멸시키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국내 유아용/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7분 포맷, 15분 포맷, 25분 포맷 등이 주로 포진되어 있으며, 7분의 경우 시즌당 39편, 15분, 25분 분량은 시즌당 26부작 정도로 구성되어있다. 보통 작가들은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6명 정도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이들을 잘 관리하면 TV 시리즈 전체를 일정한 톤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각 에피소드들의 이야기들이 널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가끔 널뛰기 한 에피소드들이 괴작이자 명작들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는 프리과정에서 다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회사의 사정에 따라 20~40% 정도의 시나리오를 제작해 두고 본편 제작을 먼저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일정을 관리하는 제작 담당들과 시나리오 작가와 마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경 세팅과 콘티제작, 애니메틱이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TV 시리즈 제작에서는 시나리오 원고 마감이 곧 일정의 관리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감독, 프로듀서, 대표 작가 1인과 함께 하는 시나리오 회의의 한순간. 커피 4잔과 하품이 이 회의의 진지함을 알려주고 있다. 결국 이 회의는 작가들에게 충격을 줬던 꿈의 시나리오 작품 <비밀결사 매발톱단>(원제:秘密結社 鷹の爪)에 대한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프리프로덕션 단계는 말하자면 작품제작의 근간을 이루는 과정으로 많은 노력과 의지, 열정이 필요하다. 탄탄한 과정이 이후 프로덕션 과정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애니메이션 회사는 이 과정을 통해 스튜디오의 제작 시스템을 정비, 개발하기도 한다. 예의 경우에서는 디자인과 시나리오 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만 언급하였지만, 여전히 사장님과 대표님들은 작품 제작에 필요한 제작비를 만드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프로듀서들과 매니저 들은 일정을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다. 콘티팀은 시나리오가 더 이상 황당하지만 않으면 하는 눈치며, 애니메틱을 만들어야 하는 담당자와 감독은 분량 체크와 연출 노트 작성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한 6개월에서 9개월 정도가 흘러간다. 그 사이에 투자사와 이야기도 잘 되었고, 공동 제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파일럿 제작도 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프리단계가 끝나간다면 이제 제대로 된 팀을 꾸려서 작품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③프로덕션 단계인 것이다. 더 많은 일감들과 마감일정, 그리고 체력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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