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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를 응원하며: 창의성과 테크놀로지, 연륜과 비즈니스

글:김일태(조선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 / 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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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를 응원하며: 창의성과 테크놀로지, 연륜과 비즈니스

스웨덴의 인기 동화 ‘핀두스’의 작가 스벤 느르드그비스트는 “(작품 속에) 염소와 고양이를 키우며 살았던 시절과 내 아이들을 키울 때의 추억이 다 담겨 있다”며 자기 내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에 따라 동화를 써나가는 작업과정을 한국의 일간지를 통해 소개했다. 유사한 사례로 이란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자전적 성장통을 독특한 그림체로 녹여낸 그래픽노블 <페르세폴리스>(마르잔 사트라피)는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했고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되면서 관객에게도 깊은 몰입감과 감성을 배가로 전달했다. 영화의 경우 캐릭터의 삶이 자기 몸에 밸 때까지 연습하고 공부한 뒤 고도의 열정으로 촬영에 임하는 지독한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나의 왼발><데어 윌 비 블러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2013년 8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링컨>으로 세 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서 영화사의 한 줄을 새로 썼다. 그는 촬영이 없을 때도 링컨의 목소리와 억양으로 살았다고 한다.


스벤 느르드그비스트와 동화 <핀두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영화 <링컨>

화두로 펼친 몇 가지 이야기들은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는 작가와 배우의 경험, 연륜, 그리고 열정과 신념 등에 의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좋은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공식’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30년간 일본, 나아가 전 세계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한 획을 긋고 시대를 풍미하던 스튜디오 지브리가 개점휴업상태로 해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픈 일이다. 지브리의 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 최고의 역량을 가진 애니메이터들이 이상적 노동환경에서 최고의 작품을 지향하는 지브리의 유토피아적 제작 시스템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브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테크놀로지와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수작업의 노동집약적 제작방식 고수, 재미와 상상력을 넘나드는 감독의 신화적 메소드 결핍, 소비층이 두꺼운 10~20대의 신세대 가치관이나 관심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높고 좁은 스펙트럼의 무거운 주제가 핀포인트에 어긋나면서 결국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더욱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걸출한 개인적 역량과 남다른 감성의 상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지브리 공방 시스템에 2013년 미야자키 감독 은퇴로 생긴 리더십의 공백이 무엇보다도 큰 붕괴 원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브리의 위기는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후 50년이 지난 1980년대까지도 고루한 2차원 셀과 뮤지컬 형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변화의 혁신에 둔감했던 최고경영자의 무능으로 이미 두 번의 심각한 사태를 맞이했던 미국의 디즈니 위기와 다를 바 없다. 디즈니의 첫 번째 위기는 창업주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후에 찾아왔다. 1966년 탁월한 능력과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기업을 이끌었던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뒤 후계자들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의사 결정력이 떨어지면서 창의적인 사업 대신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운영에 치중함으로써 부실경영의 여파가 1980년대 초반에 찾아왔다. 1985년 개봉한 <타란의 대모험 The Black Cauldron>(테드 버만, 리처드 리치)은 10년간 제작 기간을 가졌음에도 구태한 파스티슈로 흥행실패는 불 보듯 뻔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한 최고경영자(CEO)가 마이클 아이즈너다. 1984년 파라마운트사에서 전격 영입된 아이즈너 회장은 영화사업에 진출했다가 위기를 맞은 디즈니를 다시 애니메이션 왕국으로 돌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위기 탈출에 대한 그의 전략은 첫째, 비전을 제시하고 둘째, 유능한 인력을 뽑는 데 주력하고 셋째, 조직개편을 통한 창조적 조직을 구성하고 넷째,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었다. 아이즈너의 전략과 더불어 특히, CG 기술을 도입한 <인어공주>( 1989), <미녀와 야수>(1991), <라이온 킹>(1994) 등은 예술성과 아울러 흥행 성공작이 된다. 이렇게 아이즈너 회장의 위기 극복으로 얻은 이익은 1984년 16억 달러에서 1997년 220억 달러, 시가총액도 20억 달러에서 670억 달러로 크게 성장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마이클 아이즈너, 로버트 아이거, 제프리 카젠버그

디즈니의 두 번째 위기는 아이즈너 회장 자신이 스스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이상 재직하면서 스스로 독재자가 되어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했다. 결국 아이즈너 회장은 내부 직원들의 반발과 경영진과의 다툼으로 인해 주주들의 신뢰를 잃고 2005년 사임했다(대표적인 실책으로, 침체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부활시킨 제프리 카젠버그를 1994년 해임하지만 그가 설립한 드림웍스는 <슈렉>(2001)으로 디즈니와 아이즈너를 조롱하며 대박을 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05년 후임자인 로버트 아이거가 최고경영자(CEO)가 되어 다시 한 번 창의성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ABC방송 기상캐스터로 출발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아이거는 아이즈너 밑에서 일할 때 그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거의 리더십으로 인해 창의적인 회사 분위기를 해치는 관료적 경영이 점차 사라졌다. 테마파크, 리조트, 스튜디오 등 각 사업부 단위는 스스로 권한을 갖고 책임 있게 일하게 됐고,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있을 때 루카스 회사로부터 1000만 달러에 매입한 회사)와의 관계를 회복시켰고, 두 제작사 간 계약이 만료된 2005년에 이어 2006년 1월 24일에는 스티브 잡스 애플 CEO로부터 픽사 지분을 모두 인수해(74억 달러 M&A) 2D 셀 애니메이션 명가인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3D 애니메이션 명가인 픽사의 환상적인 결합으로 애니메이션 분야의 세계적 위상을 굳건히 다졌다. 아이거 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실적은 다시 상향세로 돌아섰다. 2011년 408억300만 달러의 매출액에 88억2500만 달러의 순익을 내 매출액과 순익 면에서 모두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2012년에는 루카스 필름까지 인수한다. 이러한 성장은 그가 창의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마케팅 목표 계층을 기존 유아 중심에서 10대와 20대, 나아가 중·장년층 등 전 연령층으로 확대시킨 것이 턴어라운드에 주효했다.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실증 조사를 통해 ‘단기간에 성장한 기업들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지만, 위대한 기업들은 대부분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하고 전환점을 거쳐 도약한다’고 했다. 그 전환점이란 바로 ‘위기와 극복의 모멘텀’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실패를 통한 경험을 좌절로 끝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가지고 극복해야 한다. 최근 tvN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청춘>의 배우 조정석, 정우, 정상훈은 모두 무명기간이 길었고 고생 끝에 현재의 자리에 올라왔다는 공통점으로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받으면서 관심을 모았다. 음반시장에서는 10년 전 음반판매량에 비해 20% 줄어든 침체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위한 음악이 아닌 귀를 위한 음악을 만든다’는 영국 여가수 아델의 강한 신념을 담은 3집 앨범 ‘25’가 스트리밍 없이 작년 11월 20일 발매 이후 1주일 만에 338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면서 존재감을 굳혔다.

SF영화 단일작품으로 38년을 이어가는 시리즈 ‘스타워즈’의 7번째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개봉 이틀 만에 전 세계 매표실적 2억500만 달러(2,960억 원)로 제작비 2억 달러(2,360억 원)를 넘어선 오늘, 30년이란 시간을 지브리의 열정으로 꽃피운 상상과 창조력의 연륜을 믿으며 테크놀로지 시대의 혁신과 비즈니스의 통찰로 <가구야공주 이야기>가 희망하던 ‘다시 살아나는 생명체’처럼, ‘애니마(Anima)’로 부활해 진화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이여,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 <바람이 분다>(2013)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가 허둥대며 만든 영식함상전투기 ‘제로센(零?)’의 망상으로 우월에 찬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허황되고도 참담한 부활은 꿈도 꾸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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