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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향기일수록 더 맑다

글:김일태(조선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부장)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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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향기일수록 더 맑다

편집자 주: 본 원고는 대선 이전에 쓰여진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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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북쪽으로 올라가면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아담한 연못 가운데 자리 잡은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의 `향원`은 북송 시인 주돈이(1017∼1073)의 ‘애련설(愛愛說)’이라는 시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 予獨愛蓮之出於 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靜植 可遠觀而不可褻玩焉 -

- 나 홀로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겼음에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덩굴을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고, 물 가운데 꼿꼿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매만질 수는 없구나 -

라는 뜻을 가지면서 고종황제의 소박한 치적의 상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한편 이러한 소망을 담고 그 뒤편에 함께 지어진 건청궁(乾淸宮)은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이라는 아픈 역사를 남긴 채 경복궁 뒤뜰에서 단청도 올리지 않고, 북악산 아래 청와대 앞을 지키는 담박한 건물로 남아있게 되었다.

며칠 전 대통령 선거 26일을 앞두고 안철수 후보가 후보직을 내려놓음으로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간 양강 대결 구조가 되었다. 무한히 아름다운 푸른 바다의 살얼음판에 배를 띄워야 할지, 걸어서 여행을 해야 할지 고민스런 상황에서의 판단처럼 걱정스럽지만 다행이고 동시에 아쉽고도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나라 발전을 위한 정책과 공약을 통해 미래발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시기가 이미 오랜 기간 늦추어졌고, 지역과 조직간 헤게모니에 매달리는 정세는 뉴스시간 후반의 얄궂은 사고소식에 뒤이어 10여분간을 장식하는 요란한 ‘스포츠뉴스’만이 갖는 방송편성의 편협된 정서와도 다를 바 없다.

2012년 한국 GDP는 2만 3,500~2만 4,000달러로 세계 12위가 예상된다. 그러나 고속경제성장에 따른 정량보편적 행복수치는 행복실감지수에 대한 상대적 상실감을 낳았고, 무한경쟁의 패러다임은 기본적인 윤리의식을 실종케 하면서 사회질서가 무너져 많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초·중·고 학교의 교육환경과 애로사항, 어린이와·청소년들의 정서에 대한 문제점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지만, 이제 그렇게 성장한 영어·수학 시험달인 대학생들이 빚어내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정작 창의, 감사, 배려, 공감, 미안에는 매우 인색하다. 더군다나 아침수업시간에는 편의점에서 구입한 음식들을 태연스럽게 먹고 마시고 있고, 눈빛을 마주해야하는 토론시간에도 최근 보급된 스마트모바일기기로 데스크탑의 온라인을 대신하는 초고속무선통신망을 통해 문자교환과 게임, 웹툰을 일상의 습관처럼 즐기고 있다. 또한 필요하다면 수업 중에도 단잠을 자거나 강의실 밖 화장실로 나가 개성인양 제멋대로 용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는 웃지 못 할 짓궂은 코미디 같은 상황들이 적잖게 벌어지고 있는, 10년 후 대한민국이 염려되는 시대다.

최근 온라인과 모바일게임으로 인한 패러사이트(기생)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자녀범죄가 염려되는 20대들에게, 23살의 의대생 체 게바라가 정든 집을 떠나 라틴아메리카를 8개월간 여행한 여정을 다큐멘터리방식으로 재현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영어·수학 그리고 게임과 웹툰 이상으로 절실히 추천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깊은 사색으로 닫힌 윤리관을 열어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재정립 하고, 내재된 자신의 순수한 혁명과 예술가의 혼을 태우는 독특한 상상의 연금술로 새로운 환타지아를 창조하길 기대해본다.

2000년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발행하는 잡지 ‘중화자녀’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방(劉邦), 유수(劉秀), 유비(劉備) 등 3유는 개인적으로 재능이 뛰어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라고 언급한 지 11년이 지나고 이제,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은 지난 11월 15일 기자회견 연설에서 “행복한 생활이 우리가 분투하는 목표”라면서 당 간부들을 향해 “강철을 만들려면 우리부터 단단해져야 한다”라는 말로 부패를 경계했다. 이러한 내용은 ‘같은 쇠라도 담금질하는 망치는 뜨겁게 달아오른 무쇠보다 차갑지만 강하다’라는 의미로 문화혁명의 마오쩌둥, 국공내전 대승과 톈안먼 유혈진압의 등샤오핑, 실용주의노선의 장쩌민, 경제성장의 후진타오에 이어 시대상황과 변화, 용도에 따라 그 두들기는 힘과 열기를 달리해야하는 14억 중국인 통치에 대한 새 지도자 시진핑 리더십의 일면을 보여준다. -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에서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는 오다 노부가야,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명언을 남긴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 3인의 일본 평정 스토리와도 같이 -

한편, 얀 슈반크마이어와 퀘이형제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질적 이미지의 특징과 유사한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 선과 악, 성공과 실패, 생산과 소비 등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공존의 패러독스는 대선을 앞둔 우리사회의 ‘혼돈과 질서’, ‘방황과 여행’이라는 키워드 속에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충족시키는 2,500여 년 전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의 역설적 플롯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교과서에 <정치·경제>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정치-경제-문화’라는 염기서열 같은 체계의 고착화는 세월과 정도를 더해 가고 있다. 정량적 수치와 산술적 풀이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가치와 한 차원을 넘어서는 미의 영역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품격이 녹아 있는 돌연변이 같은 별종의 순수한 태생들이 이 혼돈과 방황의 시기에 아름다운 정신과 건강한 질서의 특별한 여행이라는 행복한 미소를 머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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