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페이지 위치

HOME > 영화글 > 영화인

전체게시물 38개, 페이지 1/4
게시판 리스트

남편 유창국과 청맥녹음실 이야기

남편 유창국과 청맥녹음실 이야기

글 : 송영애(한국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 2017.09.20

90년대 이후에도 한국영화 녹음을 지속한 것과 달리 청맥녹음실은 1980년대 말 충무로를 떠난 데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들어 점차 영화 일은 줄어든 반면 TV 드라마 일이 늘어났다. 1987년 청맥녹음실은 MBC 6·25 특집 3부작 <천둥소리>(정문수)의 동시녹음을 시작으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황인뢰, 1990) 등 ..

세 개의 이름으로 산 영원한 보헤미안

세 개의 이름으로 산 영원한 보헤미안

글 : 김종원(영화평론가) / 2017.09.20

시대를 맞게 된다. 1963년 <성난 능금>이 바로 그 돌파구다. 한양영화사가 김묵 감독에게 맡겨 완성한 이 영화는 과수원을 배경으로 한 사생아의 이야기다. 잇따라 그는 최희숙의 두 번째 작품 <바람난 고양이들>(1964)의 각색을 맡게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이 된 김용언은 임하와 서라벌예술대학 동기생으로 개봉 후 최희숙과 결혼해 뉴..

영화적인 인생을 살아온 낙천적인 영화인

영화적인 인생을 살아온 낙천적인 영화인

글 : 배수경(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 2017.07.20

을 쌓기 시작했다. 신상옥 감독의 돌발적인 선택 때문에 신필름에서 감독 데뷔가 늦어진 일화, 9일 만에 완성해 명보극장에 개봉한 영화 <숙부인>(1966), 신필름 소속으로 세기상사에 파견되어 여러 편의 장르영화를 연출한 경험 등 흥미로운 일화가 그의 구술채록문에 담겼다. 신필름에서 나와 충무로에서 활동하며 검열로 고초를 겪은 여러 작품이 있는..

실천적 탐구파 이영일 선생

실천적 탐구파 이영일 선생

글 : 김종원(영화평론가) / 2017.07.20

23명이 참여했다. 이 선생이 70세를 못 넘기고 작고했을 때 내가 마침 그분에 이어 2대 회장직을 맡고 있던 터라 간소하나마 국제영화비평가장(葬)으로 모실 수 있었다. 인문적 소양과 논리력 겸비 그동안 내가 옆에서 지켜본 이영일 선생은 인문학적 소양과 지식이 풍부할 뿐 아니라 제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분이었다. 비평 ..

액션영화의 뒤편에서 뛰다

액션영화의 뒤편에서 뛰다

글 : 공영민(객원연구원) / 2017.05.10

는 것은 카메라 앞에서 과장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몸짓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액션 지도를 할 때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가 리허설을 통한 ‘약속’이다. <실록 김두한>에서 맡은 박치기대장 성팔이의 액션과 <동백꽃 신사>에서 이대근과 벌인 액션은 이러한 약속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록 김두한..

영화의 질감을 만들어온 40년 소품지기

영화의 질감을 만들어온 40년 소품지기

글 : 이정아(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 2017.03.09

임권택, 1981) 등 불교와 관련된 영화에서 임권택 감독과 함께했다. 그리고 1990년대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축제>(1996) 등에 참여하면서 태흥영화사, 임권택 감독과 함께 황금기를 만들어나갔다. 이 시기 태흥영화사는 경기도 벽제에 대규모의 오픈 세트장..

동향이라 각별했던 타향의 우정

동향이라 각별했던 타향의 우정

글 : 김종원(영화평론가) / 2017.03.09

하고, 그 여세를 몰아 <정말 꿈이 있다구>(1976), <아무도 모를꺼야> (1977), <우리들의 고교시대>(1978) 등 3년 동안 6편의 영화를 내놓으며, 김응천·석래명 감독과 함께 ‘하이틴영화 트로이카 시대’를 장식한다. 이후 성인영화 <처녀의 성>(1977), <아스팔트 위의..

1950~60년대 한국을 기록하다

1950~60년대 한국을 기록하다

글 : 배수경(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 2017.02.24

/> 구술자는 자신이 참여한 미국의 공보 활동은 미국이 절대적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며 상남 USIS 영화제작소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 폭넓게 구술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 종로의 근대적 일상, 6·25전쟁기 청소년의 시선으로 본 미군의 영향과 전쟁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증언을 남겼다.  ..

모더니즘 시인에서 예술단체장으로

모더니즘 시인에서 예술단체장으로

글 : 김종원(영화평론가) / 2017.02.24

뒤 판권란에 편자 명의로 처리됐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성과물이었다. ‘개화의 여명’(제1장), ‘활동사진의 등장’(제2장)에서 ‘기업화의 고빗길’까지 모두 9장으로 이루어진 「한국영화전사」는 빈약한 한국영화사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는 이봉래 이사장의 열정과 전문가적..

모두가 기억하는 그녀의 목소리

모두가 기억하는 그녀의 목소리

글 : 송영애(한국영화사연구소 객원연구원) / 2017.02.24

만난 김소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매체에서 바쁘게 살아온 배우이자 생활인이었다. 그리고 차분한 자신의 연기 스타일에 맞지 않는 역할이나 악역은 일부러 피했다면서, 연기 변신을 추구하는 연기자로서의 욕심은 없었던 것 같다고 솔직히 말하는, 자신만의 색깔을 사랑한 예술인이었다. 구술자의 기억이 많이 흐려져 출연 작품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
  1. 처음
  2. 이전
  3. 1234
  4. 다음
  5. 마지막
게시판 검색

TOP



페이지 맨 위로 이동